혼잣말

나는 지금 많이 혼란스럽다.

눙물슨 2019. 7. 30. 05:09

무작정 달리고싶은 마음에 내비게이션도 안보고 가다가 도착한 송추의 어느 도로

마음이 심란하다. 너무너무 심란하다.

최근까지 이전 직장의 업무적인 부분과, 기본적인 업무플로우가 나와 전혀 맞지가 않아 마음고생을 조금 했는데,

기회가 되서 이전 직장보다는 비교적 비전이 있지만 페이는 조금 적은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다.

입사 전까지 대략 몇일 정도의 시간이 있어 그 시간을 여름휴가처럼 생각하고 보내게 됐다.

이전 직장을 다닐 적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아서, 일이 끝나면 일부러 오토바이를 타고 목적지도 없으면서

여기저기를 쏘다니곤 했다. 당연히 시간낭비인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오토바이를 타고 뻥 뚫린 도로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일정한 나만의 속도로 달리며, 주변에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곁눈으로 느끼다보면 어느새 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 있는 지도 밖의 세상을 눈에 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퇴근길에 막히는 도로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고, 자연스레 몸도 마음도 더

지쳐만 갔던 것 같다.

200미터를 못 가 다음 신호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그 다음엔 초록불로 스윽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붉은 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취미로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밤바리' 라는 단어가 굉장히 친숙하다.

밤에 오토바이 타고 산책나간다는 뜻으로 통용되는데, 나는 마음이 심란할 때는 주로 그렇게 밤바리를 나갔던 것이다.

거의 매일같이..

최근엔 개인적으로 머리를 식힐만한 시간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일 때문에 신경을 하루종일 곤두세우고 있는 기분이 들었고, 하루에도 몇번씩 회사를 그만둘까, 그만두면 돈은 어떻게

벌어야하나.. 여기를 나오면 이정도 돈을 벌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또 해야하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찬 채 살았다.

하지만 결국 충동적이면서도 간단하게 그만둬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만두면 뭔가 후련해질 것 같았지만, 단순하게 그만두기보단 갈 곳을 정해놓고 그만둔 것이라서

슬슬 첫 출근과 새롭게 일을 배워나갈 생각에 압박감이 들기 시작한다.

 

여자친구는 몇일 내로 서울이 아닌 곳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이전에는 같은 서울이다보니 차가 막히지만 않으면 오토바이로 30~40분 안에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차가 막히고 안막히고를 떠나 자동차전용도로로만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직접 찾아가려면 막차시간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버렸다.

그렇다고 매번 중간지점에서 만나기 위해 여자친구를 부르기엔 내가 너무 미안해지기도 하고.

같은 서울에 있으면 같이 늦은 시간에 맥주 한잔 하는 것이나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 가는 것이 부담되지 않았는데.

여자친구도 생각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이전직장보다 더 좋을지 그 반대일지 확실치 않은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하게 되고, 또 이전과는 다르게

규칙적인 생활을 다시 해야만하는 상황이 되버렸고, 여자친구는 거주하는 지역이 먼 곳으로 바뀌어버리는 상황.

여러모로 다양한 변화를 겪게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뭔가 쉽지가 않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 되겠지 하고 마음은 먹고있지만,

그냥 마음이 심란하다.

이런 비슷한 감정을 예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적 할머니 댁을 한번씩 다녀오게 되면

거의 1년에 한두번 가다보니 하룻밤 내지 이틀밤을 자고 오는데, 갈 때의 감정과 올 때의 감정이 많이 달랐다.

솔직히 같은 서울에 계시고 당시엔 대중교통으로 1시간 정도밖엔 걸리지 않았음에도 자주 찾아뵙지 않았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저 귀찮고, 가고싶지 않고, 그냥 집에서 쉬고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도착해서 할머니와, 친척들과 시간을 보내다보면 집에 다시 돌아올 때 굉장히 슬퍼졌다.

영영 이별할 것도 아닌데 영영 이별하게되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의 스쳐지나가는 밤거리의 가로등불을 보면, 마음이 더 울적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렇게 많이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찾아뵈었던 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조금 머리가 굵어졌다고 감정이 너무 무뎌진건지..

가족들은 우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해드린 것은 없지만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번씩 찾아뵈면서, 아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삼일장이 끝나고, 고향 땅에 할머니 묘소를 만든 후, 집에 돌아왔을 땐 마음이 굉장히 심란했다.

나를 이해해주던, 유일하게 어떤 얘기를 해도 나를 위로해주던, 그리고 항상 나를 반겨주던 유일한 사람과

더 이상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여하튼, 그로부터 몇개월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버렸다. 짧은 인생에서 역대급으로 고통스러웠던 일도 겪었고,

너무도 감사할만한 일도 겪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제대로된 일을 하는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달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뭘 해도 쉽게쉽게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시작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어졌다.

어딘가로 여행을 가려고 마음을 먹어도, 그냥 놀러 친구들과 만나려고 해도, 당연히 해야하는 음악작업에 손을

대는 것도, 출근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반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

점점 더 물러지고, 점점 더 우유부단해져서 이런저런 말에 끌려다니는.. 어떻게 보면 이전의 나의 모습으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해본 경험이 없기도 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선택지를 자신의 손에 쥐어야한다고 믿어왔음에도,

정작 나의 모습을 뒤돌아봤을 때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선택을 대신 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그런 의미에서 내일부터는 정말 오늘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서도, 내가 지켜줘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