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8월의 시작, 그리고 처음

눙물슨 2019. 8. 2. 02:03

늦은 시간, 친구와 새벽까지 영업하는 역 주변의 그루나루 커피에 갔다.

몇년 전이든, 가장 더웠을 때를 기억하라고 한다면 나는 항상 8월을 꼽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에 장마비가 쏟아지기 전 까지만 해도 굉장히 무더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긴 방황도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됨과 동시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오늘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솔직히 말해 비젼을 보고 갔다지만, 나의 기준에서 비젼이 있는 것이지, 결코 일반적인

프로의 시각에서는 메리트가 없을 것이다. 몇몇 콜센터를 계속 다니던 나에게는, 전문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엔 IT 헬프데스크라고 알고 갔지만, 오늘 직접 가서 한번 주욱 지켜보니 대략 3일정도는 고객사에

상주하며 PC를 점검하고, 나머지 이틀 정도는 사무실에서 대기하다가 건바이 건으로 유지보수 지원을 나가는 식인

것 같았다.

첫 날이라 그런지 오늘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점심이 지나자 사양은 좋지 않았지만

메일 작업은 무리없이 가능한 PC를 지급받게 되었고, 그 PC로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의 공식홈페이지에서 소개글을

계속 읽었다.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대체 이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아직도 자세하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대략적으로 감은 있었지만 정말 중요한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가 불확실했다.

오전의 면담에서는 월요일에 따로 고객사에 직접 가서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해당 고객사에서 괜찮다고 한다면 내가

그쪽에서 일단 상주업무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그 전 업무일인 오늘과 내일은 딱히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일단 앉아서 분위기 파악을 하라고 설명해줬다.

 

나는 솔직히 첫 출근을 하고나서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던 적이 많지 않았기에, 나름

새로우면서도 굉장히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근무하는 인원에 비해 조금 좁게 느껴졌던 사무실은 개개인의

투명한 유리조차 없이 완전하게 쳐진 파티션의 공간 안에 있으면 생각보다 넓게 느껴졌고, 누구의 눈치를 봐야하는지

아직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당장 업무를 하지 않고 여유가 있더라도 회사와 무관한 다른 무언가를 하기엔

나 자신이 꽤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회사 분위기가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는지 늦은 오후부터는 슬슬 스마트폰으로

연락도 주고받고 하기 시작했다.

PC세팅이 완료된 뒤로는 나의 아웃룩 메일로 내가 아닌 다른 엔지니어에게 전달하는 내용의 메일을 몇 건 수신했는데,

그걸 천천히 읽다보니 어떤 흐름으로 업무가 진행되는지 감이 왔다. 외근이 많은 그런 특성이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원하던 키보드 타이핑을 많이 하는 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PC 유지보수를 직접 고객사로 이동하는 시간은

그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고 음악을 들으며, 주변과 연락도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보장이 되어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안에서도 그런 여유가 있어 타이핑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너무 큰 과욕이겠지.

예감 상 내가 헬프데스크라는 타이틀보다는 유지보수 엔지니어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래 일한 것 같은 포스를 풍기는 엔지니어분이 오후에 외근을 갔다가 오랜만에 사무실에 왔다고 하는데,

드디어 얘기를 어느정도 나눠보니 감이 확실히 잡혔다.

내가 업무에 익숙해지고 잘 하게 된다면 분명 편해지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과거, 20대 초반일 적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꼈던 부분..

개인사업장의 파트타임 특성상 1년정도 일하면 해당 업장에서는 꽤나 경력을 쳐주는 그런 식인데, 그런 곳에서

일을 시작하는 초반에 항상 보이는 사람의 부류가 있다. 항상 밝게 잘 어울리고, 일하는 것을 찾아서 하고, 굉장히

편한 느낌으로 그 장소의 분위기에 녹아든다.

한동안 몇몇 회사를 거치며 찾아보기 힘들었던 스타일의 사람.

너무 오랜만에 보게 됐다. 아마 나도 어느정도 긴 시간을 근무하게 된다면, 그런 공기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겠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회사의 분위기를 보자하니, 출근은 거의 정해진 정각에 가까워져 사람들이 출근하고, 퇴근 역시

시간 맞춰 오버타임 5분 내로 퇴근을 했다. 나 역시도 눈치를 보다가 정시 5분정도 이후에 퇴근했는데, 앞으로도 그런

느낌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입치고는 과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굉장히 많은 액수는 아닌 연봉과, 나쁘지 않은 분위기. 사무실 자체는

중소기업의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그래도 그런 느낌이 되려 편하게 느껴졌다. 최소한 타이머로 쉬는 시간을 수시로

체크하고, 거기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으니까..

 

퇴근 이후에는 집에서 음악작업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역시 잘 되지 않았다. 비슷한 유지보수이지만, 완전히

고객사에 상주하여 서버 유지보수 업무를 하고있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국어국문학과를

지망했지만,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해서 관련된 회사로 취업한. 같이 여러 얘기를 나누다보니 첫 날과 둘쨋 날엔

보편적으로 이렇게 회사 분위기를 익힐 수 있도록 어느정도 여유기간을 두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치킨을 먹고, PC방에 가서 오버워치를 하다보니 어느새 밤 열한시에 가까워진 시각.

그 친구는 오늘부터 이틀 휴가를 썼다고 한다. 목금토일. 내가 이 회사로 이직하기까지 가진 여유시간에 비하면

굉장히 짧다고 느껴졌지만, 나름 기분이 좋은지 항상 주말에도 칼같이 일찍 들어가던 녀석이 오늘따라 어디

들어가서 커피를 한잔 하고싶다고 한다. 나는 물론 내일 다시 출근이지만, 그래도 간만이고.. 늦게까지 영업하는

커피 그루나루에 갔다. 지금은 사라진 노량진 육교의 근처. 경찰서 바로 옆에 있는 곳이었다.

그 친구에겐 내가 이직했다는 사실은 말했지만, 이전 자동차 콜센터에서 일했던 경험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다는 것의

디테일한 내용은 몰라, 그 얘기부터 천천히 나누게 됐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렇게 얘기를 나눈다고 해서 실제로 내가 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나만이 겪고있는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을 이해해준다는 것 하나만으로 잠시나마 마음이 쉬어가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런 것 때문에 최근에 계속 주변 사람들을 만나기를 반복.. 결국 7월 한 달 동안은 사실상 음악을 완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여자친구는 토요일 오전에 완전히 인천 쪽으로 이사를 가게된다. 바이크를 타고 간다면 괜찮은 거리지만,

자동차전용도로로만 갈 수 있는 곳에 집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직접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굳이 바이크를 타고간다면, 비가오지 않지만 햇빛이 너무 강하지 않은 날을 잘 골라서 배편으로 바이크를 옮겨야한다.

배편은 당연하게도 막차가 늦은 오후이기에, 미리 숙소 예약을 하고 가야하는 것은 당연지사..

여자친구는 이제 본가로 다시 들어가는 개념이기 때문에 조금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거리와 시간.. 그리고 돈..

그래도 현실적으로 만날 수 있고,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상황이라 감사하다.

 

만약 그나마도 인천 쪽이 아니라 경기도를 넘어 어딘가로 갔다면, 그 때는 정말로 힘들어진다. 가까운 곳에 있고,

볼 시간이 충분해서 자주 봤을 때는 오히려 항상 음악작업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같이 있는 시간에 충분히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항상 이제는 슬슬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더 같이 있게됐고, 집에 가서는 또 그만큼 아쉬워하지

않는 나였다. 하지만 거리가 조금 멀어졌고, 언제라도, 늦은 밤에라도 바이크를 타고 한번에 달려갈 수 있는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일주일의 대부분을 일하는 시간으로 보내면서 주말에 한번 갈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정말로 다음 주부터는 늦은 밤에는 갈 수 없는 시간의 제약까지 생겨버렸다. 정말로 쉽지 않은 삶이다.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언제까지 철없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일이란 것을 하지 않고 정말 딱 1년만 여유있게 모아둔 돈으로 생활하며 시간을 보내고나면, 나도 심적으로 의지가

생기지 않을까? 정말로 원없이 넘치는 시간을 컨트롤하지 못해 흔들리는 시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난 다음이라면,

나도 나 자신을 다시 제대로 컨트롤하며 정해진 시간에 맞춰 뭔가를 할 수 있게되지 않을까

 

친구는 무슨 음료를 시켰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당장에라도 회사를 가지 않고 쉬어버리면 그만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후엔 어떤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정말로 알 수 없게된다. 삶이란 것은 정말로 알 수가 없어서 무슨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하지만 최소한 살아가며 마음 속에 여유가 없어서, 돈이 너무도 없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도 간단한 최소한의 기대조차 선물해줄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로 비극이다.

이전에 겪어봐서인지 생각만해도 너무 가슴이 아픈 비극이다.

 

내일도 역시 크게 회사에서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오랫동안 업무를 한 선배 엔지니어분 얘기를 들어보니, 사무실에서는

사실상 상주하는 고객사의 업무 연장선상에서 일을 처리하는 식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정작 일을 배울 수 있는 것은 고객사에 가서부터라고 하니, 그 전까지는 최대한 지금 회사 분위기에 적응해 긴장을

푸는 것에 집중해야겠다. 그렇게 할 수 있게 주어진 시간은 그래봐야 이제 내일 하루 뿐이니..

내일은 금요일이다.

그간 1년동안 굉장히 많은 추억을 쌓았던 여자친구의 공간.. 내일은 그곳의 공기를 여자친구와 함께 느낄 수 있는

정말 마지막 날이다. 뭔가가 변화한다는 것은 너무도 두려운 일이다. 항상 변화해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상황에 직면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당장 나조차도 가슴 한켠에 구멍이 난 것 같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드는데, 여자친구는 얼마나 힘들까

내일 같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그 다음 주부터는 또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해야한다.

여자친구를 만난 것은 작년 4월의 어느 날.. 취미로 했지만 나의 삶 전체가 끌려다니던 밴드에서

홍대 합동대관공연을했을 때였다. 그 때는 내가 여자친구를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마 그녀도 그랬으리라.

불과 1년 전인데.. 나는 음악에서 많이 손을 놓은 상태이고, 여자친구는 이제 밴드공연에 관심을 줄였다.

그리고 나는 밴드를 그만뒀다. 나의 인생을 내 손으로 바로잡기 위해서.

하지만 너무 오랜 기간 끌려다녔던 탓인지, 스스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몰라 아직도 혼란스럽다.

인생의 정답은 없겠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겠지. 그래도 삶에서 한두가지 정도는 가져갈 수 있겠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싶다. 결국 매일같이 생각하는 '일찍 자야지' 하는 다짐은

오늘도 역시 무너져버렸지만, 항상 바라는 것 처럼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배움도, 학력도, 교양도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내 자신이지만.. 이렇게 글을 쓰다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언젠가는 사랑을 담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음악과 글을 만들고싶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언제나 돈에 질질 끌려다니며, 좋아하던 음악조차 돈을 생각하며 방황하는 나 자신을, 이제는 슬슬 바로잡을 때가

된 것 같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내일 하루도 무탈하게 웃으며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