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대교를 지날 때 생각했다. 이제는 이 풍경을 또 보긴 어렵겠지..
성산대교는 그녀와 나를 이어주는 오작교같은 역할을 해줬다.
지난 1년 간 그녀는 연신내 쪽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그 무렵 나는 오토바이를 생전 처음 타기 시작했고, 주로 그녀에게 교통량이 적은 저녁이나 밤 시간대에, 때로는 새벽에도 찾아갔었다.
연신내의 밤거리는 생각보다 화려했다. 낮 시간의 전통시장같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젊은 층이놀기 좋은
홍대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나의 그런 부분을 잘 이해해줬고,
비록 풍족한 데이트는 아니라도 코인노래방이나 간단한 맥주, 카페, 식당, 때로는 오락실에 가는 것 까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1년이 지났다.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많이 애틋해졌다. 그리고 연신내의 자취방은 8월 3일 토요일. 오늘로 계약이 끝났다.
동시에 그녀는 멀지만 그렇다고 오가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은, 그런 곳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가 수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그 장소엔 나도, 그녀도 사실상 거리가 멀어 갈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같이 손을 꼭 잡고 걷던, 사람과 불빛으로 가득 찬 연신내의 그 거리를 다시 느끼지는 못하겠지.
어느새 시간이 지나 2019년의 완전한 여름인 8월이 되었다. 작년 이맘 때 즈음, 그녀의 이사를 도와주지 못 했지만
그녀의 자취방에 처음 찾아간 날은 늦은 밤 중이었다. 아직은 밴드를 계속하고 있을 때. 합주가 끝나고 뒷풀이가 길어져
약속한 시간보다 두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녀가 서운해하는 것이 많이 느껴져 그마저도 바로 택시를 타고 갔다.
그렇게 처음으로 연신내라는 곳의 주택가와 마주했다. 조용해보이는 여름 밤의 세븐일레븐 편의점.. 그리고 갈림길
한 가운데에 있는 편의점 CU.
처음엔 길을 몰라 그녀에게 도착했다고 얘기하고 오른쪽 길로 오르막을 올랐으나 좋지 않은 성능의 나의 스마트폰은
골목의 정확한 위치를 잡지 못했다. 이후, 그녀에게 온 전화를 받고서야 그 갈림길에서 왼쪽이 그녀에게 갈 수 있는
길이었음을 알게되었다.
여자친구는 내가 믾이 늦었다는 사실에 아주 서운한 눈치였지만, 나를 보자마자 꼬옥 안아줬다. 많이 기다렸다며..

당시의 나는 그녀를 지금만큼이나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힘든 시기에 대한 얘기를 듣고
마음이 풀릴 수 있게 얘기를 더 들어주는 것이 아닌, 항상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도안되는,
개개인의 상황에 제대로 공감하지도 못하는 나의 얘기를 듣고 자취라는 선택을 해준 그녀였고, 또한 내가 했던
말이 현실성이 없다고 해도 항상 집중하고, 기억해주고, 시도해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녀를 보러가면 언제나 나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 항상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내 귀에 대고 얘기해줬다.
얘기를 나누다보면 생각치도 못했던, 들어본 적 없던 나의 장점을 찾아서 얘기해줬고, 내가 힘들어하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얘기 대신 끝까지 들어주고 위로해줬다. 그녀는 그렇게 항상 나에게 과분한 사랑을 줬다.
그랬음에도 나는 그녀가 항상 얘기했던 간단한 부탁을 지금도 들어주지 못했다. 전화통화를 할 때는 다른 행동을 멈추고
잠깐이나마 자신에게 집중해달라고 했던 것.. 그리고 카카오톡 연락을 하다가 바빠질 것 같다면 한마디 얘기라도
해달라는 것.
그녀는 항상 나를 기다리고, 바라봐줬기에 당연히 내가 해줬어야 했던 것들이다. 그녀가 이사를 가기까지도 그것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다. 분명 힘들어했을텐데.
정작 이사 전날, 마지막으로 연신내로 갔을 때에도 내가 주도적으로 짐을 정리해주고 도와주지 못 했던 것 같다.

올해 2월부터 나는 단기계약직이라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3개월은 실업급여를 받는다고 하니 그렇다
쳐도, 직후부터는 나름 버틴다고 열심히 버텼으나 너무 힘들고 나와 맞지 않고, 비전 또한 전혀 없어 스트레스만 받던
회사를 수습기간 중인 최근에 그만두고, 운이 좋아 이직에 성공하여 저번 주 이틀간 출근한 지금의 회사.
과연 여기서는 내가 앞으로 잘 해나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또 일이 안맞거나, 너무 힘들거나, 개인 시간까지 영향을
받게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 출근해야하는 고객사가 너무 멀어 이동시간이 과하게 길면 어떡하지 하는 잡생각들..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떄가 되면 다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이 들텐데. 알면서도 치워버리지를 못했다.
차라리 6월 초부터 방황했던 그 시간을 그녀가 이사가기 전까지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면
어땠을까. 정작 그녀가 나를 필요로 하고, 힘들어 할 때. 그리고 더 같이 시간을 보내고싶어할 때 같이 있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올 2월 전까지,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그녀에게 항상 얘기했다. 계약이 만료되는거니까 실업급여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되면 당분간은 같이 시간을 더 많이 보내자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힘든 일들을 핑계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후회된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예 잘해줘버리자는 것이 내가 가지고있던 생각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후회가 남는걸까.
그녀를 처음 만난 2018년도의 4월에도, 내가 그녀를 이렇게 마음을 담아 사랑하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천천히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똑같이 나를 좋아해주고, 나 자신도 모르게 이미 그녀를 많이 사랑하게 됐다.

오늘은 너무 마음이 허하고, 가슴이 아프다. 음악을 듣고 기분전환을 해보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음악의 분위기와
가사가 너무도 지금 상황에서 공감이 되서 눈물이 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mVeGnninj68
저녁 내내 울적한 마음에 멍하게 있다가 커피를 마시자는 친구를 거절했으나, 결국 계속된 요청에 밤에 잠시
커피를 한잔 하고 왔다.
나가서도 내내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친구와 즐겁게 얘기를 나누지는 못 했지만, 그녀의 이사에 대한 얘기를
내가 털어놓으면서 친구가 해주는 말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많이 멀지도 않은 거리.. 최근에 생긴 교통수단으로 충분히 다녀갈 수 있는 곳. 그리고 너무 늦게 도착한다면
근처 사우나에서 하루 정도 묵을 수도 있었고, 주변의 뻥 뚫린 곳을 같이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정말로 늦은 밤이 되었을 때, 그녀도 이사짐 정리의 진전이 있었는지 카카오톡을 보내왔다.
대체 어째서 이제와서야 그 말풍선 하나하나가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지는걸까.
최대한 내가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해주고싶었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해보고, 시도해봐야겠다.

항상 아픔을 숨기고 나에게 애교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는 그녀다. 얘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힘들어하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는 것이 느껴지고, 또 "항상 내가 우울한 얘기 안하고 추임새 쓰니까 그런 줄만 알지~" 라는 말을
오늘 들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 조금 더 가까이 있을 때 조금만 더 신경 써줄걸..
이제는 밤중에 보고싶다고 휙휙 찾아갈 수는 없게 되버렸다. 그리고 같이 새벽거리를 거닐다가 다음 날 해주는
그녀의 요리를 먹는 것도 어려워졌다. 평일 저녁에는 오가기가 애매해 잠깐이나마 커피를 한잔 하고 휙 갈 수
없게 되버렸다.
그래도 더 잘해주고싶다.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그녀를 이해해줄 것이고, 더 많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줄 것이다.
내 자신이 무뎌졌을 때마다, 오늘 이렇게 가슴아팠다는 것을 기억 속에서 꺼내 볼 것이다.
앞으로는 최소한 나를 만날 때만큼은 어떤 걱정도 없이, 충분히 쉬어갈 수 있게, 그리고 웃을 수 있게 해주고싶다.
이사짐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고 난 뒤, 나는 집으로 혼자 돌아왔다. 도중에 왕창 쏟아진 비에 속옷까지 전부 다
젖어버렸고,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쓰지 않는다며 건내준 그녀의 블루투스 키보드와 내 보조배터리가
침수되 고장나버렸다. 불과 20분간 맞은 비로..
저렴해서 사려면 바로 살 수 있는 그런 키보드이지만, 그녀가 줬다는 것에, 그녀가 썼던 것이라는 것에 이 역시
가슴이 아팠다.
헤어지는 것도, 그렇다고 정말로 만나기 힘든 너무도 많이 떨어진 지방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호들갑
떤다고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지만 뒤돌아봤을 때 후회되는 것 투성이인 것을 어떡하랴..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만큼 내가 더 노력해서 그녀를 더 많이 웃게 만들어주고싶다.
아무도 모르는 새 옷을 적시는 가랑비처럼.. 그녀는 딱딱했던 나의 마음 속에 너무도 천천히 사랑으로 스며들었다.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너무도 오랜만에 다시금 생각하게됐다.
앞으로는 그녀와 함께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언젠가 같이 기분 내러 연신내를 오게 되면, 1년간 있었던 이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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