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화요일이다. 사실상 입사한지는 4일째 밖엔 안되는 기간이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오늘도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대기하는 것에 보내긴 했지만, 오전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서는 조금씩 할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번째로는 고객사에 제출하게 될 영문 이력서를 작성하게 됐고, 두번째로는 뭔가를 지방으로 보내야하는데, 박스에 필요한 부품을 부서지지않게 포장해서 담는 일이었다. 사실상 내가 직접 하게 됐던 일은 그 두가지였다.
영문이력서는 한국 양식과 느낌은 굉장히 비슷했지만, 포장하는 느낌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나는 평소 한국어로 이력서를 쓸 때엔 주로 정해진 폼에 맞춰 가능한한 솔직하게 작성했는데, 받아본 영문 이력서 샘플엔 가능한한 최대한 포장해서, 정해진 폼 없이 죽죽 써내려가는 식이었다. 바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차이는 칸이 나누어져 있지 않다는 것과, 사진을 넣는 란이 없다는 것.
가능한한 나를 최대한 포장해서, 다만 기본 샘플을 너무 건드리지 않게 썼다.
그리고 오전 중에 일정을 받아보게 됐는데, 바로 내일과 모래엔 각각 다른 고객사에 가서 업무를 하게 될 예정이었다.
단, 내일은 출근 시간이 조금 늦어서 퇴근도 늦어지나 걱정했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작업지원이라는 것이 고된 부분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내일 나가봐야 알 수 있겠지. 결국엔 그냥 고객사 일정에 맞춘 것일테니까.
집에 들어와서 바로 씻고 식사를 했는데, 어느새 여덟시가 다 되어간다. 집에 가던 중 차가 너무 막혀서 여의도 한강공원을 지날 때 그냥 잠시 내려서 앉은 채로 경치 감상하며 쉬었다가 갈까 싶기도 했다. 그렇게 했다면 답답한 기분이 감성적으로 바뀌는 대신 하루가 끝나버렸겠지..
집에 와서 하루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이 바쁘지도 않고, 분위기를 보자 하면 업무적으로는 괜찮은 느낌의 회사인 것 같고. 그리고 수습기간은 적용되지만 급여는 수습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된 것도 좋았다. 또 어제는 큐베이스를 팔아서 45만원을 벌었고, 오늘은 네이버 블로그를 임차해서 130만원을 벌었다.
사실상 나의 캘린더나 주로 사용하는 메일, 카페, 페이까지 네이버다보니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주변에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사람 얘기를 듣고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차피 업무적으로 하는 블로그다보니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다고. 단, 그 사람 회사에서는 계약서에 PC로는 블로그를 접속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나도 기본적으로 이전에 콜센터 일을 했을 때 개인정보를 다룰 수 밖엔 없었는데, 실상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접하다보면 기억에 남지도 않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간혹 정말 케어가 불가능한 진상이 있을 땐 따로 메모해뒀다가 퇴사하고 나서 장난전화라도 해버릴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그날 하루가 지나면 그럴 필요성조차 잊혀지고말았다. 당시엔 정말 사회악 수준이라고 생각했었는데도 결국 수많은 스쳐가는 사람들 중 날 힘들게 했던 진상보다는 나의 시간은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정답이니까. 아마도 업무적으로 블로그를 다루는 바이럴마케터들도 비슷할 것 같다.
다만 원래 불렀던 80, 90만원이 6개월 임대 치고는 너무 저렴하다고 얘길 들어서 차라리 천천히 다른 곳을 알아볼까 싶었는데, 오늘 그 마케팅회사 쪽에서 마음이 급해졌는지 금액을 130만원을 불러서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분명 130만원도 아마 좋은 값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귀찮게 이리저리 알아보는 것 보다는 납득가능한 수준에서 만족한는게 좋았다.그렇게 오늘 하루동안 그정도 금액의 돈을 번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당히 큰 돈.. 생각치도 않은 수입이라 크게 마음 속으로 동요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2달 간 계속 조금씩 마이너스였던 통장 잔고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럴 것 같으면 처음부터 괜찮은 가격을 불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사람들도 수많은 블로그를 흥정하고 사들여야하다보니 처음엔 무조건 헐값을 던져봤겠지..
돈이란 것은 정말 신기하다. 내가 직업이 없고 돈이 급할 때는 당장에 한 달에 100만원씩만 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도 그것이 급해서 그토록 더 이상은 하기 싫었던 콜센터 파트타임을 찾았다. 그런데 지금.. 90만원을 준다고 해도 딱히 감각이 없고, 바로 계약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질질 끌었던 것..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차피 무슨 일을 해도 돈을 벌기는 벌텐데 잠시 일자리가 당장 구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정말 너무도 조급했었다. 정말로 소중한, 돌아오지 않을 2개월을 날려버렸고, 소중한 사람에게 더 잘해줄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분명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소중한 사람이 익숙해졌을 때를 항상 경계해야하고, 더 잘해주기 위해 노력해야하는데 어느새 내가 그녀를 익숙하게 생각하고있었던 것은 아닌가 뒤돌아보게됐다.
오늘은 퇴근하고나서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자고 일어났는데, 어느새 시간이 열한시가 되어있었다. 3시간을 잤을 뿐인데 하루가 다 가버렸구나..
재미있게도 자는 동안 계속 머리 속에서 음악이 들렸는데, Steve Conte의 목소리에 Monoral - Kiri같은 느낌의 음악이었다. 자는 동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곡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일어나서도 기억이 나 흥얼거려봤더니 내가 전혀 모르는 곡이었다. 잊어버릴까봐 잽싸게 음성녹음을 해놓긴 했으나 작업을 하기엔 또 애매한 시간..
그래도 잠으로 모든 시간을 보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것 같아서 벌써 1년정도 줄을 안갈아준 것 같은 펜더 일렉기타 줄을 갈아줬다.
요즈음에 나는 음악작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주변에 자꾸 음악을 하지마라, 음악은 이렇게 해야한다 왈가왈부하며 귀찮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음악을 그만뒀다고 얘기했다. 듣다보면 정말 도움도 안되는 말들.. 어떻게 잘 하고 있는 사람에게 결과물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으면서 그만두라느니, 이렇게 저렇게 해야하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느니 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음악을 그만뒀다고 얘기하니 나 스스로도 뭔가 끈이 느슨해져버린 느낌이다. 거기다 이제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회사라는 곳에 취업하게 되었으니.. 기분이 정말 이상하다.
애시당초 이전에 있던 자동차 콜센터도 아르바이트를 하려다가 시간대비 급여가 너무 적어서 음악을 병행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는데, 스트레스가 심해 사실상 퇴근 후에 아무것도 못했다. 그렇게 지금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는데, 지금 회사는 시간도 괜찮고 아직 담당하는 업무도 없고. 다들 칼퇴근하는 분위기에, 대부분 내가 맡은 엔지니어라는 직책은 고객사로 갈 일이 많다보니 딱히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내가 뭘 해야할지, 뭘 하게될지를 모르니 신경이 무의식적으로 곤두서있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 음악작업을 하지 않은 그 생활에 이미 길들여져서인지 퇴근을 하고나면 작업해야겠다는 생각보단 뭘 해야 의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도 음악을 하고싶다. 남는 시간에라도 조금씩 해봐야지.. 하는 생각만 수천번, 어쩌면 만번 이상 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작업대에 앉아 시작하는 것이다. 말로만 뮤지션이었던 과거가 수치스럽다.
내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대로 애매한 인간으로 남고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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