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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찰록

바이러스

인천의 어느 백화점

나는 음악을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항상 음악을 들으면서도, 이 음악에서는 어떤 부분이 아쉽고, 다른 음악에서 좋은 걸 가져다가 합치면 정말 좋겠네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음악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했고, 음악과는 관련이 없는 그런 일들을 단순한 돈벌이용으로 해나가기 시작했다. 했던 일 중의 일부는 재미를 붙여서 하다보면 책임감도 생기고, 재미있기도 했었다. 사실상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아르바이트의 개념에 더 가까웠지만.
일을 하다보니 점점 필요한 돈은 많아지고,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간 김에 더 많이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하루 네시간 정도였던 돈을 벌기 위한 시간이 나중으로 가니 하루에 아홉시간 가량이 됐다.
그리고 그마저도 하루에 7시간을 일할 때 까지는 돈이 더 필요해 주말까지도 쉬는 날 없이 일했다. 그러다가 결국 아르바이트로는 무슨 짓을 해도 최저임금 뿐이라는 사실을 느끼게된 것은 그렇게 오래 전이 아니다.

지금도 음악에 꿈이 있다. 한달동안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는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는 작곡가 지망생일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엔 그런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나름 재미도 있고, 힘들지도 않다. 여기저기 고급지고 신기한 외국계 기업 사무실을 오가며, 때로는 백화점 매장 한켠에서 멍을 때리며,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업무 시간 내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여간 즐겁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처럼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게 될 것 같다. 아직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바쁘지 않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영종도 시가지의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급하게 멈춰 바닷가 방향으로 찍은 사진이다.

"직업이 뭐니", "뭐하는데?", "하는 일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의 머리 속에서 흘러나갈 대답의 우선순위는 음악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 좁아터진 주변 음악하는 사람들보다 실력이 조금 더 낫더라도, 언제나 대답은 하고있던 아르바이트나, 다니고 있던 직장이 먼저였다. 음악을 한다고 하면 꿈을 가지고 있다며 멋지다고 해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는 음악에 관해서는 굉장히 심한 말을 들어왔다. 그들은 나와 그정도로 가깝지만, 그렇다고 음악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의 음악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내가 보내는 시간 중 음악을 만들거나 연습하는 시간은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으로 취급했다.
아마도 나는 그들에게 듣는 "하지마라", "대체 왜 하는거냐" 라는 이야기가 가슴에 박혀있었나보다.

어쩌면 입에 물린 재갈을 잡아끄는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망아지처럼 이미 이런 상황에 세뇌되고, 길들여져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음악을 그만뒀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얘기해놓았더니 주변에서 나에게 갖잖은 조언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던 그들의 진의를 깨달았다. 나의 젊음이 부러워서.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들의 성에 차지 않을 것이라는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이라는 탈을 쓰고 앞길을 막아버리는 단어로 사람의 머리를 채워나가는 것.
나는 살면서 터득한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남에게 갖잖게 나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는 사람을 잃는다.

마음이란게 참 간사하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보다 편한 일을 하면서 돈을 더 많이 받고, 시간적으로 더 많은 여유를 가지는 것을 볼 때는 자신이 그 사람보다 능력이던 어떤 부분이던 한가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납득하는데, 친한 사람의 경우엔 어떻게든 흠을 잡아내려고 한다. "그러니까 그렇겠지", "다 장단점이 있는거지", "나나 너나 뭐.."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직업이나 소득 수준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려다니게된다. 나는 표면상 보이는 능력 만큼이나 사람의 그릇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는대로 스스로와 주변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왜냐면, 자신이 믿는 현실을 쫒아가는 것이 사람이니까.
예전에 다큐멘터리, 소설로 대히트를 쳤던 시크릿 이라는 작품이 있다. 들여다보면 자신이 믿는대로 현실이 바뀌어간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만한 요건을 갖춘 사람들이 간증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런 부분을 종교와 연관짓지 않고 굉장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말하는대로 된다고, 나 역시도 음악을 그만둔다고 주변에 오피셜하게 얘기한 이후로 음악에 손을 대고있지 않다. 나에겐 정말로 삶의 이유였고, 만들지 않으면 항상 우울한 나날 뿐이었는데도.
하루하루가 굉장히 의미없이 흘러가는 느낌이다. 맞는 일을 찾았고, 재미를 붙이기엔 아직 이르지만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져간다. 나도 이렇게 내가 꿈꾸던 것과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많은 시간과 많은 돈을 투자하고, 굉장히 좋아하는 것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한심하게 취급했던 사람들이 증오스럽다.


'의지, 현실, 앞날, 결혼, 봉양, 돈, 한심, 그러고 살거야, 언제까지, 나중에, 말 안들어서'
참으로 역겨운 키워드다. 저 키워드를 조합하면 사람을 절망 속에 빠뜨릴 수 있다. 할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에 언제나 그늘 뿐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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