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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잊혀진 추억을 되살려본 8월 7일 수요일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어쿠스틱 기타 줄을 갈아줬다. 이제는 베이스 줄을 갈아줘야하는데, 여분이 없다.
일렉기타와,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한참 나에게 추억이 많았던 몇년 전, 그 때의 나는 적어도 2~3개월에 한번 정도는 줄을 갈아줬던 것 같다. 하루에도 몇시간 씩은 연주를 해줬으니, 계속 사용하면 소모품 주기는 짧아지기 마련. 그만큼 연습을 많이 했던 것이다.
거의 1년만인 것 같다. 밴드를 하면서도 줄을 거의 갈아주지 않았고, 더군다나 작업을 하면서도 갈아주지 않았다.
줄이 거칠어지고, 갈색빛으로 변색이 된 것은, 어쩌면 예전과는 달라진 혼란스러운 나의 마음과 같았다.
너무도 오랜만에 줄을 갈아봐서인지, 본래 가지고있던 깔끔하게 헤드를 감아주는 노하우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소리는 잘 나지만, 굉장히 균일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엉망으로 감아진 기타줄

그렇게 저녁식사를 하기 전 까지 기타연주를 잠시 했다. 최근에 갑자기 떠올라 의미없이 치던 코드진행.. 옛날에 레슨을 받을 적엔 다른 곡에 붙지 않는, 기타가 주인공이 되는 코드나 몽환적인 느낌의 코드를 쓰면 돈을 못 번다는 터무니없는 소리에 열심히 따르느라 몰래 나 혼자 있을 때만 쳤던 코드진행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나의 느낌대로 음악을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애매하게 누군가가 원하는 음악보다는 내가 원하는.
식사를 하고나서 여자친구가 부탁했던 시험 일정을 알아보던 중, 원서접수를 하기 위해서는 회원가입을 해야한다고 되어있었다. 회원가입.. 본인인증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시도라도 해봐야지 싶어 그녀가 자주 사용할법한 아이디를 찾기 위해 그녀의 블로그를 확인해봤다. 이전에 두세번 즈음 들어가봤지만, 최근 2년간은 네이버블로그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던 나였다.

그녀의 아이디는 상상 이상으로 간단명료했지만, 누군가가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쓴 글을 자연스럽게 보게됐다. 자신의 감정이나,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사진을 몇장씩이나 올려 그 때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써놓았다. 그저 그렇게 많은 글들을 봤을 뿐인데, 나의 대한 얘기와 생각을 그녀가 많이 하고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그리고 그녀의 많은 고민들을 블로그의 글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이사를 했지만, 이사가기 전까지의 나와 보냈던 시간을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해줬다.
그래서 나는 구글포토에 계속 백업시키던 사진 중에서 그녀의 사진만 골라 따로 앨범을 만들었다.
2019년 8월 3일.. 7월.. 6월.. 4월.. 2018년 12월.. 7월..
천천히 그녀의 사진을 하나씩 모아 앨범에 추가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때는 그녀의 행복해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나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구나. 이 때는 그녀가 오늘 하루 정도는 뭘 하고 싶어했는데 내가 해주지 못했구나.. 이 때는 내가 쓸데없는 말로 괜히 그녀를 미안하게 했구나.. 조금 더 잘해줄걸..
500장이 넘는 사진은 같이 갔던 곳을 찍은 모든사진이 아닌, 전부 그녀가 나온 사진이었다.
한장 한장 넘겨보기도 힘든 만큼의 사진이다. 그정도로 많은 사진을 남겼음에도 후회가 많이 남는다.
그리고 그녀를 몰랐을 시절의 나의 사진이 하나씩 보였다. 그녀가 너무도 멋지게 찍어줬던 최근 나의 모습에 비해
얼마 되지않아 금방금방 넘겨져버리고, 셀카로 찍은 사진이 많았다. 정말로 나의 옆에는 그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 사진 따위를 위해서가 아닌, 나의 인생에서.

거의 1년간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베이스의 낡고, 벗겨진 줄

그런 감정을 느낀 직후, 과거에 내가 이웃추가를 해놓았던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스무살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대학 진학 대신 일본 유학을 가겠다고 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신문장학생 제도를 통해 학비를 내 손으로 충당하며 일본 현지에서 어학당을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많이 발달되지 않아 구글에 뭔가를 검색하면 한국어로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다음 카페가 거의 유일한 정보통일 시절, 자신의 신문장학생 유학생활을 블로그에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그 새벽 일찍 신문을 나르는 고된 생활을 타지에서 혼자 해내고 있던 여성분이었다. 당시엔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블로그 이웃추가조차 소심하게 잘 하지 못했으나 용기내어 이웃 신청을 했다. 왜냐면, 이웃만 볼 수 있는 글이 있었기 때문..
당시 결국 쓰나미를 핑계로 일본행을 포기하고난 뒤에도 몇년에 한번 즈음 클릭을 잘못해서 들어가봤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직업학교 생활을 했고, 어느 날은 졸업 후 현지에서 취업을 했고, 어느 날은 남자친구를 사귀었던 일상을 올렸다.
나는 그간 어떤 삶을 살았나 뒤돌아봤을 때, 그런 자신의 길을 닦아, 여자 혼자 타지에서 외국인임에도 홀로서기에 성공하고, 계속 발전되어가는 그 사람의 인생에 비해서 나는 갓 스무살이 넘었던 시절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똑같은 고졸, 명함하나 없는. 운전면허를 빼고는 자격증조차도 없었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벌어놓은 푼돈과 애매한 음악실력과 패션 테러리스트에서 벗어났다는 것. 그리고 대인기피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정도였다.
그 사람은 당시 사귀던 일본인 남자친구분과 결혼을 한 모양이다. 굉장히 존경스러웠다. 8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글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동안 계속 가끔씩이라도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을 올렸다는 것도 대단했다.
성공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고, 결혼을 하여 사실상 일반적으로 꿈꾸는 인생을 완벽하게 이룬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들어가봤던 것은 중학교, 고등학교 당시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의 블로그. 지금도 이따끔씩 연락하는 IT라는 같은 틀 안에서 일하고있는 친구.. 2011년도의 글이었다. 나름 내가 내세울 수 있는 남들에게 인정받는 몇 안되는 것 중 한가지인 글재주가 생각이 났다. 당시 그 친구는 소설가를 꿈꿔 국어국문학과를 지망했지만 상반되는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친구였다.
내가 이런저런 글을 써서 블로그에 업로드하는 것을 보고, 그 친구도 자극을 받았다며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긴 글로 정리된 생각을 나누는 느낌이어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있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가기 위해 머리를 잘랐다는 글.. 축구경기에 대해 실망했다는 글.. 등
그 친구는 마초적인 성향과는 꽤나 반대되는 녀석이지만, 중도를 아는 굉장히 괜찮은 친구다. 오늘까지도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친구.

그리고 세번째로 들어가본 블로그는 지금은 잘 연락하지는 않지만 김포 쪽으로 이사가서 잘 지내고 있는 친구였다. 일본에 대한 공통된 관심사가 통해서 같이 일본 여행도 다녀왔던 친구였다. (물론, 현지에서 많이 걷기를 좋아하는 내 성향과 맞지 않아 여행은 나 혼자 따로 했다.)
2010년.. 당시 나에겐 처음이었던 해외여행. 그 친구는 여행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써놓았다. 당시 다들 꺼려했던 자신의 얼굴을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 버젓히 올렸던 친구였다. 지금도 여전히 그 사진은 잘 올라가있는 것으로 보아, 참 대단하고 괜찮은 친구인 것은 확실하다.

나름 깔끔해보여도 3~4줄 정도 감겨야하는 것에 반해 정돈되지 못한 기타줄

2010년.. 2011년..
그 때를 생각하면 굉장히 오래전 같지만, 그저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흘러버렸을 뿐이다. 나에게도 수많은 일이 있었고, 지금에 비하면 조금은 다른 모습의 내가 떠오른다. 페이스북에 올라가있는 비공개 사진첩엔 나의 2010년도, 2008년도의 모습이 담겨져있다. 아직도 20대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그 때에 비해 얼굴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기분이 너무도 이상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과거의 날것같은 나 자신과 마주한 모습.
그 당시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좋아한다. 이따금씩 글을 쓰고싶은 욕구가 몰려와서 몇일 정도는 계속 글을 쓰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한 몇달 정도는 거의 이런 긴 글을 쓰지 않는다.
그런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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