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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하루하루

영종도 아파트 단지 주변. 태풍이 오기 전 날, 여름하늘이 너무 멋졌다.

요즈음엔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 이전에는 퇴근하면 항상 뭔가를 해야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살았다. 지금은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많이 부족한 삶이겠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마음이 편안한 시기다.
항상 능력을 키워야하고, 항상 준비해야하고. 그런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나는 일을 하는 시간을 마음 속으로 제한시켜버렸다. 이 시간 이상 일하면 내가 뭔가를 준비하고 능력을 키울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 어르신들의 취미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라면 삶은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가치관의 압박을 전신으로 받아내다가 제자리에 쓰러졌던 내가, 드디어 다시금 생각을 천천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다시 하나하나 시작하고싶다. 요즈음엔 주말에 한번씩 운전 연습도 하고있고, 음악은 하지 않지만 기계식 키보드의 맛을 알게된 뒤부터는 타이핑을 하며 글을 쓰는 것도 즐겁다. 일을 하며 영어를 많이 사용하고, 여러군데를 돌아다니는 것도 조금은 피곤하고 덥지만 재밌다.

최근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변화가 느껴졌다. 자신의 삶도 중요하지만 일을 하면서 얻을 것이 더 많이 있다던, 굉장히 이름있는 회사를 다녔지만 통근시간이 하루 도합 4시간이 걸리던 친구는, 얼마 전 몸을 다쳐 수술을 하고, 또 그 수술이후 의사의 오진으로 재수술을 하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아서, 그만두고 Refresh 하는 시간을 가지겠다며. 그리고 더 다양하게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며. 사실상 복지가 좋기로 유명해서, 지침대로 90일 이상 병가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친구는 이미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아마도 그런 생각과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는 다르게 어딘가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겠지.

여자친구는 서울의 어느 구시가지에서 영종도로 이사감과 동시에 동남아 휴양섬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지금은 영종도 생활에 많이 적응한 것 같다. 이사를 갈 때는 견우와 직녀처럼 생이별하고, 특정한 날에 맞춰서 엄청나게 먼 거리를 기다림에 지쳐갈 때 즈음 겨우 만날 수 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은데, 정작 영종도를 직접 다녀와보니 굉장히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막차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나름 시간 계산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저번 주 주말에는 대략 밤 10시 40분 즈음에 영종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사실상 대부분 사람들이 영종역 종점에서 내리는 것이 일상인지, 버스 안내방송조차 "이번 정류장은.." 하고 바로바로 끊겨서 여기가 어딘지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알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승객에 니즈에 맞게, 탈 승객도 없고 벨도 눌리지 않은 불필요한 정류장은 빠르게 패스하며 가는 것도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공항철도를 타고가다보니 환승할 지하철 막차시간이 애매하거나 탈 수 있는 버스의 시간이 애매해져서 아예 서울역 종점까지 갔다가 집 쪽으로 돌아오는 식으로 왔다. 그렇게 가도 편도 2시간. 빠르게 가면 편도 1시간 반 정도 걸렸을 것이다.
영종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대부분이 여행자이거나 공항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시가지로 진입해갈 수록 김포같은 신도시의 느낌이 많이 났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주거지역과 뻥 뚫린 넓은 도로. 사람이 없고 깔끔하게 펼쳐져있는 굉장히 넓은 공원. 만약 돈 문제가 없었다면 영종도에서의 삶이 굉장히 좋았을 것 같다. 다만 지금은 고속도로나 지하철, 배편 외에는 외부로 갈 수 있는 수단이 없다보니,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오토바이를 타고서는 외부로 통행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당장 내가 오토바이를 주로 운행하다보니 느껴지느 부분이었겠지만. 대략 지금으로부터 4~5년 뒤 즈음엔 제3연륙교라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잘하면 걸어서도 인천 내륙으로 통행할 수 있는 다리가 완공된다고 한다. 4~5년 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게될 것이고, 여자친구가 영종도에 살지 않을 가능성도 높은데, 시기가 너무 안맞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있게 될 때는 정말로 이런 고민따위는 완전히 잊혀지겠지.

동대문의 어느 유흥가

늦깎이 대학생인 친구녀석은 일을 다양하게 해본 적이 없음에도 자신감에 차있다. 해본 일이라고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와 대형마트 판촉 일용직 뿐임에도, 자신은 재학중인 학과와 하려는 일 특성상 많이 일해서 많이 벌 수밖엔 없다며, 무조건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자신감이 근거가 없지는 않겠지만, 나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꼰대기질이 남아있었는지 "잘 될거다,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해나가는 모습이 보기가 좋네" 라는 말과는 상반되게 마음 속으로는 취업시장에 나와서 스스로의 가치가 어느정도인지 통계가 나오면 그 때부터는 기분이 조금 안좋아지겠지.. 그래도 저 친구가 정말로 잘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인천 쪽에 사는 친한 동생은 고졸에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밖에는 없는, 나와 동등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취업센터에 가서 자신이 받고싶은 연봉을 꽤나 높게 잡고 계속 알아봤다. 내가 굉장히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던 나의 연봉을 공개했을 때 "그 정도면 너무 적은거 아니에요?" 라고 얘기했을 정도로.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을까. 그 친구는 취업을 하고 바로 그만두는 식을 두번정도 하다가 취업시장의 현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일자리가 잘 안구해지고, 생각했던 것 보다 연봉 협상이 어렵다고 했다. 타겟팅했던 업종도 자신과 잘 맞지 않다고 판단이 되어 입사한지 4시간만에 그만뒀다고 했다.
점점 그 친구도 현실과 타협해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신기하게도 나는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냥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오전 오후 모두 청소직으로 시간제 2잡을 하고 있었는데, 오후 청소일을 그만둔 뒤로 부동산에 직원으로 들어갔다. 다시 본인의 일을 시작하니까 나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역시나 피해망상 비슷하게 편집증이 있는 엄마 특성상 매일같이 전화통화로 누군가를 욕하고 있다. 생각보다 자리도 괜찮은 것 같고 기다리면 큰 계약건도 많을 것 같은데, 그리고 계약하나 성사시킨 후로 바로 다음날 입금 안해준다고 초조해하고 안좋은 생각 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반면교사를 삼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다시 다른 부동산을 알아보고있다. 역시 한군데 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고, 아직도 교회에 혼자서 원로목사님 처우에 관해서 청원을 쓰고 돈을 가져다 바치는 것을 고치지 못했다. 본인 입장에서는 정의로운 일이겠지. 일의 경중을 판단을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어느새 글을 쓰다보니 밤 열한시가 넘었다. 조금만 나의 복잡한 안에 들어있던 무언가를 써내려가면 시간이 이렇게 늦어버린다.
2019년도 여름의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대체 어떤 삶을 살고싶은걸까.
나의 삶에도 환한 빛이 들어오는 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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